운명과 김장

길을 걷다가 신호등을 기다리며 높이 솟아오른 신축 아파트 단지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앞에 있는 저층 건물은 상업용 건물인가요?? 호텔인 줄 알았어요. 와, 요즘 한국에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지어진 상업용 건물에 빈집이 많다고 하는데 여긴 쇼핑몰이 아니라 호텔이었어요. ‘사랑이 담긴’ 아파트를 보기 위해 순천에 왔는데, 이곳에는 타인의 육체적인 사랑마저도 진정한 사랑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것 같다. ..

교차로 단지에 함께 위치한 아파트와 호텔

주거지역과 상업지역, 산업지역이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는 미국이 정말 불편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는데, 앞으로는 그런 생각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다들 이유가 있겠지만… 오늘 모임은 먼 친척을 만나기 위한 모임이었는데, 막걸리 몇 병을 사왔습니다. 처음 만날 때 선물을 가져가는 것도 이상하고, 오래전 한국을 떠난 이후로 친척들 사이에 그런 격식을 내려놨는데, 그 사람이 막걸리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막걸리를 몇 개 집어 들었습니다.

이포나루 생막걸리 울 엄니가 아주 어렸을 때 한국전쟁이 터졌고, 전쟁 초기 서울에서는 어느 날은 북한군이 동네를 배회하고 다음 날은 흑인 미군이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 그리고 다음날 북한군에게 돌아가는 상황이라 어느 쪽에 줄을 서야 할지 알기 어려웠다. 가만히 있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한다. 6.25라고 해서 그냥 무작정 북한군을 밀어붙이는 줄 알았는데, 악의를 품고 그런 짓을 해서 놀랐다. 한강다리가 폭파됐고, 언덕 위에서 지금의 연세대를 향해 미군이 기관총을 쏘는 소리를 하루 종일 들어야 했다고 한다. 역사책보다 더 놀랍고, 스릴 있고, 재미있는 것은 울 어스크의 어린 시절 전쟁 이야기다. 외할머니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아이들의 손을 잡고 시골로 도망갔지만, 결국 고향 마을로 내려갔다. 그녀의 친척 집으로 끌려갔다.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물론 먼 친척이라 잘 대해주지는 않았을 텐데, 당시에는 우리가 살 수 없는 전쟁상황 때문에 친절하게 대해주고 싶어도 힘든 시절이었다. 함께. 처음 만났을 때 나이가 훨씬 많아서 ‘형’이라고 불러야 했는데, 사촌이라 ‘형’이라고 불러야 했어요. 하기가 정말 어색했어요. 즉 이산가족이 아닌 이산가족을 만난 셈이다. 잠시 쉬는 시간에 무인사에 갔던 날은 김치를 담그는 날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떠나려는 순간, 트럭에 양배추 300포기가 쌓여 있는 것을 보고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어르신들 저희는 농사일과 김치 담그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 농촌에서 살다보니 소매를 걷어붙이고 칼을 달라고 하여 배추 반 개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배추를 반쯤 수확하고 있는데, 형이라고 부르던 형이 갑자기 무를 건넸다. “이것도요.” “반값으로 드릴까요?” “아, 좀 쉬고 먹어요. 그래야 강해지는 거야..” 어렸을 때 동네 친구들이 다 유치원에 갔을 때 뒷산에서 동네 아이들 몇 명과 놀다가 그때 내가 먹던 무를 뽑곤 했었다. 뒷산 정원에 심어서 간식으로 먹곤 했는데요. . 누구 밭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로스트는 죄가 아니다’라는 분이 있어서 10개 이상 뽑은 것 같아요. 소금에 절인 양배추를 다시 잘라야했습니다. 양배추를 자르고 다시 소금에 절이는 데 하루 종일 걸렸습니다. 그걸로 끝인 줄 알았는데 “내일 또 오시죠?”라는 말이 나오더군요. “너무 힘들면 안 오셔도 돼요~~”라는 말이 더 무서웠고, 또 저는 시작한 일은 끝까지 끝내야 하는 성격이라 결국 다음날 또 가게 되었습니다. 둘째 날은 무를 썰고, 전날 절인 배추를 반, 세 조각으로 자르는 끝없는 작업을 마무리하는 날이다. 장갑을 꼈는데도 바닥에 있는 물건을 집으려고 하니 손이 시리고 허리가 많이 아팠습니다. 김치 만드는 과정에서 막걸리와 돼지고기 삶아 맛보기 다소 어려웠던 김치를 만들던 중에 김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돼지고기 삶기가 나왔습니다. 고소한 밤막걸리와 함께 삶은 돼지고기 한 점을 맛보니 정말 맛있고, 마을 사람들도 모여서 도와주고, 어르신들은 농담을 하기도 했다. 너무 재밌었어요.. 노동요라던가 그런 건 없는데 김치 담그는 게 재밌을까 싶었어요. 해질녘 시골 풍경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한국에서 와서 전국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바쁘게 지내다가 갑자기 이틀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잠시 멈춰있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새로운 인연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어른인데도 사촌언니가 나 덕분에 김치 담그기가 쉽다고 하더군요. 빠르게 끝났고, 다른 사람이 가까이 오면 자동으로 이야기가 계속 반복되는 리플레이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것이 내 동생의 삶의 방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을 비난하고 비판하고 빼앗는 것이 요즘 세상에 잔혹한 룰이고 때로는 뭉클하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향긋한 밤통통 막걸리와 김치, 그리고 삶은 돼지고기 한조각… 어쩐지 시원한 겨울. 돌아오면 김치 담그던 생각이 나고, 로스쿨 진학과 사법고시 공부를 마치고 아버지 때문에 고향에 돌아와 농부가 된 사촌동생 생각이 나고, 매일 막걸리를 마신다.